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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세상.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들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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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노턴

[KBS스페셜]

최초공개,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 [다시보기]


방    송 : 2005년 7월 24일(일) 20:00 ~ 21:00  KBS 1TV

<프로그램 개요>

KBS 탐사보도팀은 지난 4월부터 석달에 걸쳐 일본 국립 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일본 내각 상훈국의 서훈 재가 문서 천여권을 정밀 검색해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3천 3백여명의 한국인 명단을 찾아냈다. 이 문서에는 명단뿐만아니라 이들의 공적조서까지 낱낱이 기록돼 있다. 이 친일 서훈록 분석을 통해 어떻게 친일 세력이 형성되고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를 규명한다.

또한 이들이 해방이후에도 특별한 반성없이 대한민국의 주요 기관에 계속 활동했다는 사실을 추적한다.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조선인 명단 전체를 입수해 정밀 분석한 것은 KBS 탐사보도팀이 처음이며 이 서훈록은 사료적인 가치뿐만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친일자 명단 선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내용>

 서훈록을 통해 발굴해낸 새로운 사실들

1) 일제 서훈자 3천 3백여명 분석결과
- KBS 탐사보도팀이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일본내각 서훈재가문서 천여권 을 정밀 분석한 결과 1897년 당시 특명 전권대사로 일본에 갔던 외무대신 이하영이
최초로 일본 훈장을 받는등 광복까지 모두 3천 3백여명이 일본 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 됐다. 최고 5번의 훈장을 받은 사람이 2명이나 됐고 두번 이상 훈장을 받은
사람도 520여명으로 나타났다.

3천 3백여명을 직업별로 분석한 결과 훈도와 교유, 교장등 교육자가 68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경찰이 582명이었고, 일제의 강제수탈에 직접적으로 동원됐던 군수 499명, 군 공무원이었던 군속 268명,육 군 192명,조선 총독부 공무원 141명, 그리고
판사 55명, 검사 18명,재판소 직원 54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가운데 147명은 해방이후에도 계속 군수로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일본의 훈장은 크게 7종류로 나뉘는데 최고 훈장은 대훈위 국화장목식으로 일본 왕족에게 수여된 것으로 민간인으로는
러일전쟁당시 도고제독이 유일하다.

그다음 품격인 국화대수장도 주로 일본 왕족에게 수여되는 것인데 한국인으로는 고종, 순종, 이완용이 받았다. 욱일장은 특정한 공을 세운 관료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68명이 받았고, 서보장은 관직에 오랜기간 근무하면서 실적을 올린 공직자에게 수여된 것으로 모두 2720명이 받았다.


2) 러일전쟁,친일파의 태동
- 정확히 백년전 우리 국토를 무참히 유린했고, 종전후 대한 제국에 대 한 사실상
강점결과를 가져온 러일전쟁!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쇠약해진 상황이었지만 엄연한 주권국가인 대한제국의 황제였 던 고종은 엄정 중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대한 제국의 일부 군인들은 일제편에 앞장섬으로써 친일 집단이 대규모로
생성되는 최초의 계기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신문학의 효시라는 ‘혈의누’의 작가 이인직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서훈록에 나타난 공적조서를 통해 러일전쟁 친일파들의 활동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이들이 추후에
어떻게 친일파의 거두로 성장해나가는지를 서훈록은 생생하게 기록 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군인들은 이때부터 창씨개명을 한 사실도 처음 밝혀졌다.


3) 해방이후 서훈자들의 행적은?
- 해방이후 일제 서훈자들은 우리 정부의 주요 요직을 계속 차지했으며 후에 검찰총장 이 된 인물도 있고, 대법원장도 2명이나 나왔다. 어떤 인사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건립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또한 최근 수사권 독립을 놓고 벌인 검찰과 경찰의 낯뜨거운
친일 논란의 실체와 허구성도 밝힌다.

KBS 탐사보도팀이 입수한 3천 3백여명의 서훈자 명단을 토대로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돼 있는 친일 잔재 문제를 정밀 추적해 우리 사회의 친일의 뿌리가 얼마나 깊숙이 박혀있는지를 진단해본다.


한숨만 나온다...

:맥노턴.



(KBS보도자료추가)

원문 : http://cyberpr.kbs.co.kr/cast/cast_show_new.html?cd=2212&table=cast

KBS 스페셜
‘최초 공개,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

▣ 방송 : 7월 24일(일) 저녁 8시 - 9시(1TV)

KBS 탐사보도팀은 지난 4월부터 석달에 걸쳐 일본 국립 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일본 내각 상훈국의 서훈 재가 문서 천여권을 정밀 검색해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3천 3백여명의 한국인 명단을 찾아냈다.
이 문서에는 명단 뿐만아니라 이들의 공적조서까지 낱낱이 기록돼 있다.
이 친일 서훈록 분석을 통해 어떻게 친일 세력이 형성되고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를 규명한다.
또한 이들이 해방이후에도 특별한 반성없이 외세를 등에 업고 대한민국의 주요 기관에 계속 활동했다는 사실을 추적한다.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조선인 명단 전체를 입수해 정밀 분석한 것은  KBS 탐사보도팀이 처음이며 이 서훈록은 사료적인 가치 뿐만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친일자 명단 선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훈록을 통해 발굴해낸 새로운 사실들
  
1) 일제 서훈자 3천 3백여명 분석결과

- KBS 탐사보도팀이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일본내각 서훈재가문서 천여권을 정밀 분석한 결과 1897년 당시 특명 전권대사로 일본에 갔던 외무대신 이하영이 최초로 일본 훈장을 받는 등 광복까지 모두 3천 3백여명이 일본 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고 5번의 훈장을 받은 사람이 2명이나 됐고 두 번 이상 훈장을 받은 사람도 520여명으로 나타났다.
  3천 3백여명을 직업별로 분석한 결과 훈도와 교유, 교장 등 교육자가 68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일제의 강제수탈에 직접적으로 동원됐던 군수 499명, 군 공무원이었던 군속 268명, 육군 192명, 경찰 154명, 조선 총독부 공무원 141명, 그리고 판사 55명, 검사 18명, 재판소 직원 55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47명은 해방이후에도 계속 군수로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일본의 훈장은 크게 7종류로 나뉘는데 최고 훈장은  대훈위 국화장목식으로 일본 왕족에게 수여된 것으로 민간인으로는 러일전쟁 당시 도고제독이 유일하다.
그 다음 품격인 국화대수장도 주로 일본 왕족에게 수여되는 것인데 한국인으로는 고종, 순종, 이완용이 받았다.
욱일대수장은 특정한 공을 세운 관료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68명이 받았고,서보대수장은 관직에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실적을 올린 공직자에게 수여된 것으로 모두 2720명이 받았다

2) 러일전쟁, 친일파의 태동    

-정확히 백년 전 우리 국토를 무참히 유린했고 , 종전 후 대한 제국에 대한 사실상 강점결과를 가져온 러일전쟁!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쇠약해진 상황이었지만 엄연한 주권국가인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엄정 중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대한 제국의 일부 군인들은 일제 편에 앞장섬으로써 친일 집단이 대규모로 생성되는 최초의 계기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신문학의 효시라는 ‘혈의누’의 작가 이인직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서훈록에 나타난 공적조서를 통해 러일전쟁 친일파들의 활동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이들이 추후에 어떻게 친일파의 거두로 성장해나가는지를 서훈록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군인들은 이때부터 창씨개명을 한 사실도 처음 밝혀졌다.

3)해방이후 서훈자들의 행적은?

-해방이후 일제 서훈자들은 우리 정부의 주요 요직을 계속 차지했으며 후에 검찰총장이 된 인물도 있고 ,대법원장도 2명이나 나왔다.
어떤 인사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건립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또한 최근 수사권 독립을 놓고 벌인 검찰과 경찰의  낯뜨거운 친일 논란의 실체와 허구성도 밝힌다.
KBS 탐사보도팀이 입수한 3천 3백여명의 서훈자 명단을 토대로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돼 있는 친일 잔재 문제를 정밀 추적해 우리 사회의 친일의 뿌리가 얼마나 깊숙이 박혀있는지를 진단해본다.

주요 일제 서훈자

김석원(가네야마) - 일본육사 27기,1939년 일제 훈장
                 43년 부민관 학병 권유 선동 강연
                 해방뒤 1사단, 수도 사단장 등을 거쳐 육군 소장 예편
                 60년대에는 안중근 의사 동상건립위원장까지 맡아

박승준 - 일제 치하 총독부 재판소 서기로 출범, 독립투사 재판에 서기로 참여
          1926년 경성지법 춘천지청 판사 임명 뒤 1936년 훈 6등 서보장.
          해방 뒤 3.15부정선거,4.19 당시 검찰총장.
          학생 시위 배후에 간첩 의혹 제기해 논란

조용순 - 일제 판사 출신.1937년 훈6등 서보장.
          해방 뒤 7대법무부 장관, 2대 대법원장

조진만 - 1938년 일제 판사로서 훈6등 서보장 받음.
          해방 뒤 5대 법무부 장관, 3.4대 대법원장

해방 뒤 김용성 경성지법 검사장, 민병성 청주지법 검사장도 일제 훈장 받음.

이응준 초대 육군 참모총장과 이종찬 6대 육군 참모총장도 일제 치하 당시
         일본 육군으로 훈장을 받음

일제 경찰 출신으로는 독립군 토벌에 앞장서 일제 치하 경시까지 승진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창영이 일제 훈장을 받고도 미군정에서 초대 서울시장을 맡았고, 이밖에 일제 훈장을 받은 경찰로서 해방 뒤에도 대한민국 경찰 간부로 일한 주요 인물은 오영세-초대 충남청장,  노덕술-수도청 수사과장, 강보형-대구,경북 경찰청장, 노기주-2대 경남청장,  이진하-초대 전주서장, 은성학 4대 군산서장 등이다.
                

▣ 문의 : 탐사보도팀 김용진, 성재호 기자(☎ 781-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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